정미조 남편 집안

'배철수 잼'에서 이장희, 정미조가 출연해 큰 화제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70년대 디바 정미조와 세시봉 멤버인 이장희의 출연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는 '배철수 잼'입니다.

 

 

이장희씨는 사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라는 대중적인 가사로 잘 알려질만큼 유명하신 분입니다.

 

하지만 약 40년간 가수 활동을 하지 않았던 70년대 디바의 전설이었던 정미조 가수는 생소하신 분들이 많으실것 같습니다. 저도 이번 '배철수 잼'을 통해 정미조 가수를 알게 되었으니깐요.

 

그럼, 세간의 화제를 몰고 온 디바의 전살 '정미조'에 대한 포스팅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1950년생인 정미조는 올해 나이 만 70세입니다. 70세 나이가 믿기지 않을만큼 상당히 아름답고 곱게 나이가 드신것 같은데요. 데뷔 시절 사진만 봐도 빼어난 미모 그대로 곱게 나이가 든 디바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미조는 배화여자 고등학교, 이화여대 서양학 학사, 파리 국립장식미술학교 석박사를 나온 수재입니다.

 

이화여대 서양화과 출신인 정미조는 1979년 은퇴와 함께 프랑스 파리로 유학길에 오르면서 가수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1993년 파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수원대학교 조형예술학부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2015년 정년 퇴임하였습니다.

 

정미조는 1972년 '개여울', '휘파람을 부세요' 등으로 데뷔하였습니다. 최고 인기 스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던 정미조는 당시 제2의 '패티김'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인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당시 170cm의 큰 키와 서구적인 이목구비, 이화여대라는 명문대 출신 어느것 하나 빠지지 않았던 정미조는 70년대 최고의 디바로 활동했습니다.

 

'개여울'은 아이유, 김윤아 등이 리메이크도 한 명곡으로 현재까지 가수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기도 합니다.

아이유는 '개여울'을 리메이크 하기전 직접 정미조에게 전화를 걸어 녹음본을 보냈고, 정중히 허락을 맡은 일화도 있었다고 밝혔는데요. 달리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음에도 정중히 연락을 해온 아이유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화가 출신의 어머니 밑에서 자란 정미조, 아버지는 극장과 양조업을 하는 상당히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외가쪽이 모두 미술학도일만큼 예술가적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정미조입니다.

 

어릴때부터 남다른 예술가 분위기에서 자랐기 때문에 음악과 미술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어릴때 부유한 환경탓에 왕따를 당했던 어린시절도 있었습니다. "잘 사는집 딸이라고 얘들이 안좋아했다. 적당히 조금 잘사는게 아니라 다른집과 달리 너무 차이가 났다"고 말할만큼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 어린시절 왕따를 당한 사연도 있었습니다.

 

이화여대 재학생 시절 우연한 기회에 노래를 부르게 되었고, 동기들 사이에서 '노래 잘하는 이대 정미조'라고 소문이 날 정도였습니다.

 

2학년 시절 '패티김'의 눈에 띄게 되면서 자신의 쇼에까지 출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정도였습니다. 학교 교칙상 방송엔 나갈수 없었기 때문에 무산됐지만, 졸업과 동시에 tbc '쇼쇼쇼'에 출연하게 되면서 첫 가수 데뷔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 프로 하나로 방송가에서는 서로 출연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였고, 앨범 13장도 줄줄히 히트를 시키는 디바 가수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노래도 잘부르고 좋아했지만, 원래 '화가'의 꿈을 위해 파리로 유학길에 오르게 됩니다. 과감히 7년만의 가수 생활을 청산하고 파리의 낯선 곳에서 '미술학도'로써 새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사실 방송 가수의 길은 3년동안만 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쩌다 보니 5년, 7년이 흐르게 되면서'이제 원없이 노래를 했다"고 할만큼 바쁜 일정을 소화해냈습니다.

 

은퇴하기 전부터 틈틈히 불어공부를 하면서 유학을 준비해왔고, 프랑스 파리로 떠난 이후 약 13년간의 유학 생활을 하면서 개인전만 30여편 열기도 하는 꽤 인지도 높은 화가로 성장했습니다.

 

13년간의 유학 학비 전액과 생활비까지 전액 지원받은 장학생으로 힘들게 공부해왔다고 합니다.

 

가수 활동으로 번 돈으로 미술 재료를 사고 음식을 해먹고 김포 갑부 딸이었음에도 경제적 지원은 한푼도 받지 않은 똑순이 유학생이었습니다.

 

한국으로 귀국해 수원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친지의 소개로 남편 원용계씨를 만나게 됩니다.

남편 원용계씨는 6살 연상으로 한번 이혼 경력을 갖고 있는 중소기업 사업가였습니다.

 

약 4개월간의 교제를 갖은 뒤 1993년도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당시 나이가 결혼하기에는 늦은감이 많은 45세였다고 하는데요.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짐작해봤을때 나이 때문에 결혼을 한것 같지는 않고, 정말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뒤늦게 결혼한 케이스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탓인지 자녀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업가인 남편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싫어해 한번도 공개한 적은 없습니다. 정미조는 과거 남편에 대해 화실에 늦게까지 일해도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잘 이해해주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과거 대중들에게 모습을 잘 드러내기 않았던 정미조 남편이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었는데요. 이는 다른 유명 작곡가 고 오세은씨가 별세하면서 생긴 루머로 오보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가수를 은퇴한지 교수와 화가로 살아온 정미조는 2016년 37년만에 새로운 앨범으로 제2의 가수 생활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한 프로그램에서 인연을 맺었던 최백호 선생님을 미술 전시회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가수 활동의 재기를 적극 추천했다고 합니다.

최백호 선생님이 아니였으면 다시 가수로서의 삶을 시작할수 없었다고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왜 이런 좋은 노래를 안하느냐"고 망설이는 정미조를 설득해 37년만의 가수 복귀를 시작할수 있었습니다.

 

'배철수 잼'의 인기는 회를 거듭할수록 높은 인기를 얻을것으로 예상됩니다.

 

오는 17일에는 양준일의 근황도 공개된다고 하는데요. 그동안 방송에서 볼수 없었던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들의 근황을 다시금 볼수있고 추억할수 있는 차별화된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상으로 정미조에 대한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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