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란 딸 박성신

박재란 60~70년대 시대를 풍미한 여가수의 이혼과 미국행

심장마비로 먼저 세상을 떠나보낸 가수 박성신 엄마의 굴곡진 인생사

 

 

60~70년 한 시대를 풍미한 여가수 박재란

 

오는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60~70년대 큰 인기를 누린 가수 박재란씨의 가슴아픈 인생사가 전해집니다.

 

1938년생 올해 나이 82세로 본명은 이영숙입니다. 서울 경성 출신으로 1남 5녀중 4녀로 태어났습니다.

 

1953년 박재란 나이 16살때 한 라이브 클럽에서 가수로의 첫 데뷔를 시작한 박재란은 60~70년대를 풍미한 여가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산 너머 남촌에는', '코스모스 사랑', '러키 모닝'등의 대히트곡을 남겼습니다.

1959년 영화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에서 첫 출연하면서 영화 배우로도 활동한 배우이기도 하죠.

 

경쾌한 멜로디의 목소리와 이국적인 외모로 어려웠던 60~70년대 힘들었던 온국민들에게 따뜻한 감성을 주는 박재란씨였습니다.

 

박재란은 유년시절부터 잔병치레를 많이 할정도로 허약한 편이어서 7살때 '뇌염'으로 사망진단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다행이 기적적으로 살아날수 있었지만 6.25 전쟁중이었던 부친을 박재란 나이 10살이 되던해 잃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철도국 직원이셨다고 합니다.

 

앞쪽 왼쪽- 이금희 윤복희 혀미 박재란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부터 유난히 음악적 재능이 남달랐던 박재란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은 박태준씨였다고 합니다.

 

바이올리스트이자 작곡가인 김광수씨와 인연을 시작으로 당시 인천경찰악대장 박태준씨를 만나게 되면서 군부대 악단 등에서 첫 무대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박은 예명이 박재란이고 박태준씨는 그녀를 수양딸로 삼을만큼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무리한 일정으로 폐가 나빠져 약으로 버티면서도 하루에 30곡이 되는 노래를 불렀어요. 젊을때니까 가능했지 무엇보다 대중들의 응원이 가장 큰 힘이었다"고 할만큼 가수와 영화배우로 큰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남편 박운양 이혼후 미국행을 선택한 박재란>

 

박재란은 작곡가 김광수씨의 집에 갔다가 전남편 박운양씨와 첫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전남편 박운영은 영화제작일을 하다가 사기를 당하게 되면서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100평 남짓 2층 집도 팔게 되고 전셋집으로 이사를 갈만큼 경제적으로 힘들어졌고 두사람의 사이도 안좋아졌습니다. 결국 두사람은 여러가지 불화를 시작으로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여배우에게 이혼은 "당시 여자가 이혼하는 것은 죽은 생명이나 다름없었다"라고 생각할만큼 힘든 결정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이혼했을까'라는 말로 대신하는 박재란은 첫번째 결혼 실패후 힘든 시간들을 견뎌왔습니다.

 

당시 어린 두딸은 남편의 반대로 한국에 남겨두고 1973년 홀로 미국행을 선택하게 됩니다.

 

재기를 위해 한국을 오가며 재기를 꿈꿨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고 아파트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그녀의 모든것을 읽게 되는 비극도 찾아왔습니다.

 

불법 체류자 신세로 감독에 다녀오기도 하고, 한국 교민에게 사기를 당해 20억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에서 또한번 결혼도 했지만 결국 두번째 이혼을 겪어야 했습니다.

 

미국에서 마음의 병을 얻은 박재란은 악성위궤양과 신장염으로 쓰러지기도 하고 부정맥으로 대수술도 2번이나 받았다고 합니다.

 

낯선 타지에서 두딸에 대한 그리움과 극심한 생활고로 "미국에서 죽으려 했었다. 되는것이 없으니 내가 살면 뭐하나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처음에 미국행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낙원인줄 알았다. 하지만 불법체류 신세가 됐다. 재혼을 해 영주권을 얻었지만 불행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둘째 딸 박성신에 대한 그리움>

 

고 박성신씨는 박재란의 음악적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아 1987년 대학가요제를 수상하며 가수로 데뷔하였습니다.

 

박성신씨는 '한번만 더'라는 대표곡이 있는데요. 핑클, 마야, 이승기 등의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 한 곡으로도 유명합니다.

 

박성신씨는 가수 활동을 이어오다 결혼 이후 연예활동을 잠시 내려놓고 기독교 활동에 전념하고 있던터 향년 45세 나이에 심장마비로 돌연사하였습니다.

 

박재란은 한국 귀국후에 둘째딸의 가수 데뷔 소식을 듣게 되었지만 선뜻 딸들 앞에 나설수도 없는 신세였다고 하는데요.

 

죽어도 가수는 되지 않았으면 엄마 마음도 있었지만 가수의 꿈을 키워가는 둘째 딸이 누구보다 대견하고 마음 따뜻한 효녀 딸이 아닐수 없었다고 합니다.

 

60~70년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동료 가수인 현미는 둘째 박성신에게 선뜻 나서기 못하는 엄마에 대한 오해와 미안함을 대신 전해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박재란은 자신의 재능을 쏙 빼닮은 둘째딸 박성신을 2014년 심장마비로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도 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박재란은 과거 둘째 박성신을 임신했을 당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임신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복대를 항상 차고 다녔다고 합니다.

 

"너무 꽁꽁 묶어서 그걸 못견디고 조산했다. 인큐베이터에서 석달을 있었는데 모든 기관이 다 약했다. 운동을 해도 안됐다"고 고백했는데요.

 

결국 평소 지병인 심장질환으로 먼저 떠난 둘째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은 이루 말할수 없을것 같습니다.

 

 

첫째딸 박성은씨와도 자주 볼수 없다고 하는데요. 남편의 사업때문에 중국으로 이민을 간지 20년째라고 합니다. 북경대에 다니고 있는 손주들 또한 1년에 한두번 정도만 만나고 있다고 해 애뜻한 마음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박재란은 현재까지 딸의 이루지 못한 가수의 꿈을 대신하며 "네가 못이루고 갔던 것 백분의 일이라도 엄마가 하고 가겠다"는 생각으로 고령의 나이에도 가요 무대에 서고 있고 교회의 일꾼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60~70년대 살아있는 트로이카 여가수이자 배우로 활동한 박재란의 가슴아픈 사연은 12일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확인하실수 있습니다.

 

2020/02/09 - [방송 연예] - 정지소 나이 본명 방법

2020/02/11 - [방송 연예] - 이수지 남편 결혼

2020/02/07 - [방송 연예] - 박술녀 가족사

2020/02/05 - [방송 연예] - 이재용 아내 아들

2020/02/04 - [방송 연예] - 남경읍 남경주

'방송 연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인영 김지석  (0) 2020.02.13
류수영 박하선 집안  (0) 2020.02.12
이수지 남편 결혼  (0) 2020.02.11
드라마 '방법' 들여다보기  (1) 2020.02.10
정지소 나이 본명 방법  (0) 2020.02.09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