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술녀 가족사

◈  한복 명인, 한복예술가, 연예인들이 즐겨찾는 한복으로 유명한 '박술녀'

◈ 남편의 외조와 애정으로 지금의 한복 명인이 될수 있었던 박술녀 인생사

 

최근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유쾌하고 호탕한 성격으로 많은 웃음을 주고 있는 한복 예술가 박술녀입니다. 그녀만의 특별 영업 방식은 많은 인증샷을 남기는 것이라고 해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기도 했었죠.

 

 

 

외국인 손님에게 끊임없이 사진 촬영을 부탁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잘 나온 인증 사진'뿐이라는 의외의 반전 모습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는데요.

 

유독 큰 얼굴 사이즈를 작게 보이려 얼굴을 뒤로 하는 모습이 유쾌하고 호탕한 박술녀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것 같은데요. 화통한 성격과 남을 웃겨주는 남다른 끼로 연예계에도 화려한 인맥을 갖고 있는것 같습니다.

 

 

 

<박술녀 어린시절, 가족사 어머니>

 

한복 명인 박술녀 원장은 1957년생으로 올해 만 63세입니다.

 

4살 연상의 남편 이원세씨와 슬하 아들, 딸을 두고 있습니다.

 

한복 연구가 1세대 이영희, 이리자 뒤를 잇는 대표적인 한복 연구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술녀

 

그녀는 찢어지게 가난한 유년으로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했습니다.

 

 

지난해 방송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한 박술녀는 불우하고 가난했던 어린시절을 공개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눈이 보이지 않은 장님으로 불우하게 자랐던 외할머니는 박술녀 어머니를 힘들게 키웠습니다.

 

외할머니는 박술녀에게 가난 때문에 제대로 된 글도 깨우치지 못했던 박술녀 어머니처럼 살지 않도록 부자가 되라고 지어준 이름입니다.

 

"열두 대문을 달고 살아라'란 의미가 담겨있다고 해요. 대문이 12개 정도면 아주 어마어마한 집규모를 뜻하는 것이겠죠?! (하지만 집평수가 아무리 크다고 한들 집 대문은 보통 한두개인것 같은데 말이죠)

 

박술녀 어머니는 남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고달픈 삶을 살아왔습니다.

 

노름에 빠진 아버지 대신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는 다른 집 식모 생활을 하며 어린 자식들 7남매(이중 박술녀는 3째딸)를 키웠습니다.

 

당시 하루 세끼 먹는것은 상상할수도 없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지금이야 우리는 하루 세끼가 아니라 다이어트와의 전쟁에 있을만큼 풍족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서민들의 삶의 소원은 하루 세끼 먹는것이 소원일 정도로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었죠.

 

"지금도 기억이 난다. 저도 다른집에 식모로도 가봤다. 아이 봐주는 곳이었다"고 눈물을 보였습니다.

 

 

박술녀는 어릴때부터 어머니가 자주 한복을 입는 모습을 보고 한복에 대해 알게 되었고, 초등학교만 졸업한 후 바로 방직 공장에 들어갔습니다. 무엇보다 한복 예술가 명인이 될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어머니 역할이 컸다고 밝혔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모든게 귀했을 때 기술이라도 배우라고 하더라. 우리나라 없어지지 않는 한 한복은 계속 사랑받을 것이라고 하셨다"고 한복사랑이 넘쳤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습니다.

 

꼼꼼하고 세심한 어머니의 손재주를 그대로 물려받은 박술녀는 어릴때부터 가난으로 구멍 난 양말을 예쁘고 꼼꼼하게 수선하는 어머니 모습을 보는것이 참 좋았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쏙 빼닮은 박술녀는 바느질감 앞에서만큼은 섬세하고 꼼꼼한 손재주를 가졌습니다. 풍기는 외모와 호탕한 성격과 달리 바느질 앞에서만큼 소녀가 된다는 박술녀씨입니다. 9년 전 86세 박술녀 어머니는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한복을 좀더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열정에 유명한 한복집에 들어가 기술을 배우고 싶었지만 문전박대만 당했다고 합니다.

 

그 길로 서울에 사는 오빠집으로 올라와 이리자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서 문하생으로 입문합니다.

 

당시 26살이었던 박술녀는 바느질을 배우기에 많이 늦은 나이였지만, 남들보다 두세 배 시간을 더 투자에 쪽잠을 자며 바느질을 익혔다고 합니다.

 

1986년 문화생이 된지 5년만에 독립하게 되면서 1세대 명인을 잇는 한복 명인이 될수 있었습니다.

 

당시 청주대 영문과를 다니던 여동생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도 있었습니다.

 

임신한 상태에서 뇌암 판정을 받은 여동생은 끝까지 출산을 고집하다가 아이를 낳다가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항상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여동생 몫까지 열심히 살고 한복으로 성공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해요.

 

 

 

<박술녀 남편 이원세씨 남다른 외조>

 

박술녀씨는 결혼전 맞선을 27번이나 볼 만큼 외모가 뛰어난 편이 아니였습니다.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남편 이원세씨 외모가 상당히 훈남형이 아닐수 없는데요. 반면 박술녀는 여성스러운 이미지보다는 여장부에 가까운 호걸이 아닐수 없죠.

 

박술녀 딸은 과거 방송에서 "엄마와 아빠 관계는 팬과 연예인 사이보다 심하다"고 말한적도 있습니다.

 

남편 이원세는 젊은 시절 키 185에 건장한 체격에 잘생긴 얼굴까지 박술녀가 한눈에 반했을만큼 멋진 분이셨습니다.

 

"1년만 딱 만나고 결혼하자고 내가 매달렸다. 애걸복걸하며 결혼하자고 애원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결국 박술녀의 끝없는 애정공세에 만난지 3개월만에 초스피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박술녀는 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키가 172밖에 되지 않았더라고 눈에 콩깍지가 씌었었다고 밝혔습니다.

 

결혼후 박술녀는 당시 공무원이었던 남편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1986년 서울 군자동에 작은 한복집을 낸 박술녀는 첫아이를 출산하러 가는 날까지 한복에 집착했다고 합니다.

 

출산을 하는 마취 직전까지 한복 치수를 점검할 정도였다고 해요. 분만 직전까지 양수가 터지는 것도 모르고 밤새도록 일을 했을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한복에 집착했는지 잘알수 있을것입니다.

 

부업 정도로 생각했던 한복집은 박술녀의 갖은 노력과 정성을 쏟아 사업이 번창하게 됩니다.

 

남편은 가정일에 소홀한 모습에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결국 공무원이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안일과 아이들 교육을 대신 도맡게 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왜 공무원을 그만둬? 말할수 있었겠지만 당시 공무원은 지금처럼 각광받는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 흔히 할수 있는 직업 정도?였다고 하네요. 시대가 시대인지라 당시 사업이 번창한 아내 대신 직장을 그만두고 파파맘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나는 그림만 엄마이고 부인이었지 한게 하나도 없었다"고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해주었습니다.

 

 

<연예계 협찬으로 한복의 대중화 성공>

영화와 드라마 속 사극에서 박술녀의 한복은 더욱 빛을 발합니다.

 

최근에는 전통의 미를 고스란히 가진 한복에 대한 아름다움이 각광을 받고 전세계적으로 한복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방송가에 첫 진출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한복이라는 것은 특별한 결혼식이나 돌잔치에만 갖춰입는 불편한 옛날 옷이었죠.

 

"한복도 눈에 자주 띄어야 입는법이죠. 한복이 잊혀지는 것이 안타까워 협찬을 시작하게 됐어요"

박술녀는 1993년 '국악한마당'을 통해 방송계에 첫 한복을 협찬하게 되면서 한복에 반한 관계자들의 요청으로 협찬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한복에 대한 관심도 떨어졌고 다소 부정적인 경향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박술녀만의 세심함과 꼼꼼함은 알음알음 연예계 입소문이 터지기 시작했고 연예인 한복 협찬 전문가로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협찬이라고 해서 대충 넘어가지 않아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히 저도 그들에게 요구하는게 있어요. 최소한의 매너와 프로의식이요"

 

이금희 아나운서는 박술녀와 인연을 맺은지 25년차입니다. 25년전 '국악 한마당'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이후 25년동안 단 한번도 똑같은 한복을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침마당 설특집, 추석특집 마다 늘 새로운 갓 지은 한복을 입을수 있는것은 박술녀의 애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금희는 박술녀가 보통 돈을 많이 버시는 줄 알고 있는데 속사정은 그렇지 않다라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정말 순수한 분이셔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별로 가진게 많지 않으신 분, 마음이 부자신분"이라고 전해주었습니다.

 

 

'사장님귀는 당나귀 귀'에서 박정수가 나온 방송편이 나가고 난후 한복 가격에 대한 문의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원단에 따라 가격은 많이 다르지만 보통 200만원에서~ 500만원 정도라고 전했습니다.

 

40여년간 한국 한복의 대중화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앞장선 장본인 박술녀의 꿈은 나중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남기는것이 최종 목표라고 하는데요.

 

이미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일등공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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